전혀 예상치 못 한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봤을 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다. 비 오는 날 하굣길에 우산을 든 엄마….라든지…. 단편영화에서도 그런 재미가 종종 있다. 익숙한 배우, 감독, 심지어는 뮤지션을 보게 될 때이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당혹감 내지는 신선함. 이를 줄여서 일명, “뭐야?”이다. 9월의 단편영화는 바로 영화 안과 밖, 상업과 독립의 경계를 뛰어넘은 당혹스럽고도 신선한 등장들을 주제로 삼아보았다.

“뭐야?”가 또 약간 중독성이 있어서, 프로그래밍하고 싶은 영화가 유독 많은 기획전이기도 했다. 일부 소개하자면, 최은솔의 <노르웨이 맨>과 강정인 감독의 <각자의 입장> 등이 있었다. 쟁쟁한 논의를 거쳐 선정된 작품은 강대희 감독의 <불 좀 주소>, 김윤선 감독의 <지구 최후의 계란>, 박세영 감독의 <Godspeed>이다. 각각의 영화 속 “뭐야?” 포인트는 어딜지, 호기심을 갖고 꼭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라.

그럼 발견과 놀라움이 가득한 감상이 되길 바란다!

 

Godspeed(2020)

27min 25sec

Synopsis_ 도시에 밀수된 선물은 비밀리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실수를 저지르고 선물은 점점 망가지기 시작한다.

 

Director

박세영

 

Filmography

<캐쉬백> (2019)

<사랑(사이) 깍두기>(2020)

<Godspeed>(2020)

 

전작 <캐쉬백>(현재 유튜브에서 감상 가능)으로 젊은이들의 중고거래 풍토가 주는 위험성을 폭로한 Z세대 감독 박세영. 그는 힙과 뮤직을 전유한 21세기 강북 스타일리스트다. 그의 영화에는 특별히 새롭거나 기구한 사연이 없어서 좋다. 영화는 사건의 중차대함보다 어떤 감각과 느낌에 더 의지한다. 보고 있다면 절대 가본 적 없는 종로나 을지로 어디 으슥한 힙스터 술집에 있는 기분이 들고 만다. 아마 박세영만큼 당근마켓- 광기의 힙합 열풍- 을지로의 부활 등 동시대 우리 젊음을 가장 밀레니엄다운 방식으로 압화할 수 있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그의 영화를 통해 우리는 복잡하면서도 경쾌한 젊음을 감각하고, 서울 밤거리를 느낄 수 있다.

 

Review

By. 로사

 

눈썰미가 좋지 않은 관객(나처럼)이라면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특별출연인지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프로그래밍한 이유는 특별출연자가 주는 신선함 혹은 재미 때문이 아니다. 단지 좋아서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아 그 사람이 이 사람이야? 혹시라도 궁금해할 관객을 위해 힌트를 주자면 ‘음악’이다. ‘음악’은 <갓스피드>를 관람하는 데에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영화는 인물이나 (그 내막이 상세한) 사건을 따라가지 않는다. 익명의 힙스터들이 서울 거리 곳곳을 스치며 만들어내는 리듬과 박자로, 이 영화는 만들어진다.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이미지의 반복. 지루해질 때쯤 갑자기 변주. 점점 빨라지다가 끝. <갓스피드> 영화라기보다는 음악에 가깝다.

문학적인 음악 영화 아니고, 진짜 음악적인 영화는 흔하지 않음으로 이 영화가 낯선 관객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런 의문 :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왜 이렇게 된 건데? 정체가 뭔데?) 그러나 젓가락질 잘해야 밥 잘 먹던 시대는 끝났다. 포크로도 포카락으로도 밥 먹는 포스트모던한 시대가 도래했다. 과감히 서사에 관한 강박을 버릴 것을 추천한다. (물론 <갓스피드> 의 서사는 굉장히 재치 있다) 뭐, 일해라 절해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쨌든 좋은 영화임을 설득하고 싶을 뿐이다!

슬슬 특별 출연자의 정체를 밝히자면, 재주 있는 재즈 플레이어(색소폰 연주가이자 작곡가) 김오키 씨다. 김오키 씨는 영화에서 배우로만 활약한 게 아니라 전반적인 영화 음악을 감독했다. 이 영화는 듣는 맛이 중요하므로, 굉장한 요직에 있었던 셈이다.

모쪼록 동시대 가장 세련된 어법을 구사하는 두 아티스트 등등이 만나 이룬 영화이니 시청각의 첨단 아닐까 싶다. 보는 맛도 듣는 맛도 있다. 좋은 소식은 또 다른 김오키 x 박세영 콜라보가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는 김오키 연출 박세영 촬영이다. 미쟝센 영화제 인터뷰에 따르면, <갓스피드> 이후 김오키 씨의 인스타그램 하이라이트에 박세영 감독이 등판했다고 한다.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사람의 우정과 협업을 응원한다.

 

 

지구 최후의 계란(2020)

15min 33sec

Synopsis_ 지구 최후의 날, 지구 최후의 계란 한 알을 둔 마지막 사투

 

Director

김윤선

 

Filmography

<촬영하는 날> (2015)

<휴가> (2017)

<갇힌 남자> (2020)

<지구 최후의 계란> (2020)

 

장르의 경계를 사뿐히 넘나들며 다채로운 필모를 쌓아가고 있는 젊은 감독이다. 한양대학교 졸업 작품 <휴가>(2017)를 시작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갇힌 남자>와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미술상을 받은 <지구 최후의 계란>에 이르기까지 소재와 형식에 있어 일관됨을 취하지 않고 과감히 도전하는 시도가 돋보인다. 필자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감독 리스트에 제일 먼저 그녀의 이름을 적어두었다.

 

Review

By. 야옹이

 

그렇다. 영화의 문을 여는 익숙한 내레이션의 실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가 맞다. 그는 스크린 안쪽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유인책인 동시에 이야기를 끝맺음하는 최후의 주인공이다. 보이지 않음에도 선명히 그려지는 배우 오정세의 연기는 껍질 안에 갇혀있던 목소리가 세상 밖으로 분출되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베일에 싸인 그의 정체가 드러남과 동시에 어쩌면 배우 오정세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이스터 ‘에그’로구나 생각했다.

영화 속 ‘에그’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사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저마다의 한정된 계란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계란을 차지하기 위한 사투가 재난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이 보편적이다. <지구 최후의 계란>에서도 생존을 위한 익숙한 사투가 펼쳐지지만 여기에서 계란은 조금 다른 효용을 지닌다. 이들은 ‘살아보겠다고’가 아니라 ‘살려보겠다고’ 죽기 살기로 계란에 달려든다. 남자는 어린 아들을, 여자는 임신한 딸을 살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종말을 앞둔 지구로부터 자신이 아닌 자식을 구출하기 위해 있는 힘껏 소리친다. “다섯 살 남자애!”, 그리고 “이십팔 살 여자애!”

두 사람의 간절한 외침이 겹쳐지는 바로 그 순간,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최후의 계란이 갈라진다. 이 또한 누군가를 ‘살려보겠다는’ 아이의 순수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된 게 이들의 선택은 초지일관 내가 아닌 타인을 향해있다. 그리하여 지구 최후의 날, 지구 최후의 계란은 예정에 없던 쓸모를 다한 채 거룩한 최후를 맞이한다. 자, 이렇게 지구상에 단 하나 남은 유일한 구원행 티켓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이들은 예정된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 이토록 심심한 엔딩이라니!

그렇지만 당신이 영화의 엔딩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 쉽사리 싱겁다는 표현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 더 이기적으로 굴어도 됐을 인물들의 선량한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저려온다. 엔딩크레딧이 흐르기 전 감독이 남긴 깜짝 선물처럼 이들이 한 식구가 되어 어디선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지만.

 

 

불 좀 주소(2009)

8min

Synopsis_ 한강에서 바람을 맞고 바람맞힌 친구와 겨우 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남자에게 기타를 맨 남자가 담뱃불을 빌리려고 하자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Director

강대희

 

Filmography

<기억에 묻다>(2005)

<불 좀 주소>(2009)

<살려고 하는 자>(2009)

 

Review

By. 로이

 

정면을 쳐다보았을 때, 사람의 시야 범위는 210°이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150°은 영원히 알 수 없다. 뒤를 볼 수 없고, 알 필요성도 느끼기 힘들다. 있는 것은 앞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한강 주변을 배회하던 ‘담배남’은 바람맞힌 친구와 통화하며 잠수대교의 바람을 가르고 있다. 친구는 자신의 것들이 아닌 것들-가령 담배남의 시간이나 우산 등-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들을 소중히 대해주지 않는 친구가 야속하다. 그러나 그 역시, 다른 사람에게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별거 아닌 담뱃불도, 잠깐의 시간도 ‘기타남’에게 쓸 수 없다. 그것이 기타남에게 중요한지는 알 바가 아니다. 담배남은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한다.

기타남은 그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던 간에 아무것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도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 역시 자신을,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렇게 등장인물들은 서로를 무시하며 새로운 자신들-소중한 것들을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을 만들어 낸다.

카메라는 멀티캠으로 담배남과 기타남을 비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인물의 시선은 여전히 일직선을 향한다. 그가 뒤를 돌아본 건 나아가기 위해 또 다른 앞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만 바라보기, 그리고 그것의 반복들, 단 두 명-친구를 포함한다면 세 명-뿐이지만, 계속 반복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그 시선은 결코 서로를 향하지 않기에, 이곳에서는 감독 봉준호도 무명의 기타남으로 남는다.

영화는 일종의 경고장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을 때, 우리는 서로를 죽인다. 조금 더 상대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상대의 노래를 들어준다면 마지막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서로의 무심함이 서로를 죽이지 않게 영화는 이들의 무지함을 선명하게 조명한다.